금요일 수업에서 송진선CP님을 만나뵙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SBS에서 인턴쉽을 하면서도 뵈었던 분인데, 전 그때 인격적으로 미성숙했고 실력도 수준미달이었거든요. 나를 그때 그 모습으로 기억하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건 제 흑역사니까요...아...그땐 진짜 내가 왜 그랬는지... 그렇게 ‘그땐 대체 왜 그랬지 ?’ 하고 계속 생각하다보니 내가 PD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보내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처음부터 ‘PD’가 되기로 결심했던건 아닙니다. 우선 막연하게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했었어요. 자기 색깔, 자기 세계를 확실히 가지고 있는사람. 하지만 그 안에 갇히지 않고 오픈된 사람. 내 안에 있는걸 남들이 알기 쉽도록, 알고 싶어 하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계속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몇가지 경험을 통해 ‘그런 사람’이 바로 PD라는걸 발견했어요. 좋은 pd가 되면 내가 되고싶은 그런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걸 깨닫고 나서 비로소 진로를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해야 할일이 정말 많았어요. 저는 태생적으로 정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 열심히 글을 쓰고 말을 해도 결국 아무말 아무글 대잔치가 되버려요. 그리고 생각을 많이 하긴 하는데 하면 할 수록 점점 정리가 안되서 더 혼란스러워지기만 하죠. 진짜 노답….. 그래도 뭐 계속 그렇게 답없이 살 순 없으니까 달라지려고 노력했어요. 내가 누군지, 뭘 하고 싶은지, 뭘 하고 있는지 파악해서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세상을 - 다른 사람들을 - 이해하려고 애썼죠. 이렇게 표현하니까 약간 자아분열ㅋㅋㅋ같긴 한데 결국 나 자신이랑 이 세상이 원활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내가 그 사이에서 일종의 통역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PD의 전부는 아니지만 PD의 기본, 첫 한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그게 되야 다른 사람들 사이도 묶어줄 수 있고, 다른 사람들끼리 소통하도록 도와줄 수도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 자신, 그리고 이 세상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을 겁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전 그러려고 애썼고, 지금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게 최선이니까요. 넘을 수 없는 뭔가가 있다면, 적어도 임계점까지 가는거. 그러면 그 ‘뭔가’가 구체적으로 뭔지 보일테니까요. 드라마 pd가 되기로 결심한 후로 계속해서 나를 사회에 보여주고 평가 받으려고 했습니다. 방송사나 제작사공채에 지원하는 과정도 ‘입사’라는 최종적인 목표와는 별개로, 내가 얼마만큼 통하는지 시험해보는 일종의 스파링이었어요. 스쿨에 들어온 것도, 물론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긴 하지만, 결국 나를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에요.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고 싶었어요. 숨기는것 없이 나를 완전히 보여주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 이 세상에서 통할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 싶었습니다. 통하지 않는다면 통할 수 있도록 다듬어나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모든 과거가 흑역사처럼 느껴지나봅니다. 진짜로 내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걸 수도 있고, 성장하는것처럼 느끼고 싶어서 과거를 무조건 부정하고 있는 걸 수도 있죠. 전자라면 정말 좋겠지만 후자라면…..뭐, 괜찮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죠. 이번 주말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요즘에도 종종 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본 친구들도 있었어요. 다들 어른이 되었습니다. 친구들의 가치관이 예전과 달라진걸 느꼈죠. 전 고등학교 시절에 남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내가 남들보다 잘났기 때문에,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멋진 무언가를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나를 특별하고 멋지게 만든다고 생각했죠. 사실은 정말로 이해받길 원했으면서, 내 생각이 이 세상에 통하길 바랬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노력하고 애쓰는건 ‘쿨하지 않다’고, 부족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당시에 제 주변에는 같은 마인드를 가진 친구들이 많았어요. 오랜만에 본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아직도 그런 마인드를 고수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것 같았습니다. 그게 잘못됐다고, 그 친구들도 변화해야한다고 꼰대질을 하려는건 아닙니다. 다만 내가 좋은 PD,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도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부정하고 있는 내 과거, 그걸 ‘흑역사’라고 무조건 외면하면 안된다는 거죠. 과거의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외면하는 셈이니까요. 과거의 나를 좀 더 긍정적으로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할까요. 다시 생각을 좀 정리해봐야겠습니다. 다음주는 아마 팀 기획안 때문에 정신없겠지만, 계속 나에 대해 생각해볼거에요. 정신이 진짜로 없어지면 안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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