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수강후기는 옛날이야기( ?)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2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미국드라마가 캔슬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한때 시청률 4%가 넘었던 드라마지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시청률이 떨어져서 입지가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그래도 그것보다 시청률이 떨어지는 작품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캔슬될 정도는 아니었어요. 당시 미국 드라마 관련 소식을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는 곳은 해외포럼이었기 때문에 전 매일같이 마음을 졸이며 포럼을 들락날락거렸습니다. CBS에서 그 드라마를 캔슬하는게 거의 확정되면서 팬들의 반발이 심해졌습니다. 팬들은 CBS를 비난하며 ‘불공평하다’라고 말했어요. 당시 CBS에서 방영중이던 프로그램중에 그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안나오는, 즉 먼저 캔슬시켜야 마땅한 프로그램이 얼마든지 있었는데도, 워너브라더스에서 판권을 가지고 있어서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 드라마가 단두대에 올랐다는 거죠. 전 미국드라마를 좋아했지만 제작시스템이나 산업환경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에 어떤 매커니즘으로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건지는 잘 몰랐고, 그래서 그냥 ‘아 그런가 보다ㅠㅠ’ 하고 막연하게 슬퍼했습니다. 결국 CBS는 그 드라마를 캔슬시키지 않았어요. 그 대신 시즌을 절반만 주문(13개 에피소드)하고 비수기인 써머시즌에 방영했죠. 하지만 그게 마지막시즌이었고, 제가 좋아하던 드라마는 그렇게 사실상 조기종영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번주 수요일에 미국드라마에 관련된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 전에 공부를 좀 해가야겠다는 생각에 평소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봤어요. 나무위키같은 곳을 좀 뒤지다보니까 미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CBS가 왜 자기 계열사 말고 다른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품들에게 피의 숙청(...)을 가했던건지도 알 수 있었죠. 아다시피 스트리밍 서비스의 강세로 미국에서도 지상파 시청률은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광고수익보다 2차판권 수익이 중요해졌다는 거죠. 그래서 외주를 주기 보다는 방송사와 같은 계열의 제작사가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영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라고 알고 있어요. 2015년 당시 CBS 엔터테인먼트 회장이었던 니나 테슬라의 인터뷰 (http://deadline.com/2015/08/program-ownership-nina-tassler-1201496588) 를 보면 , 이 흐름이 잘 나타나있어요. 프로그램 오너십이 key라고, 이제 자기들은 renter 가 아니라 owner라고 아주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죠. 실제로 제가 좋아했던 그 드라마말고도 많은 드라마들이 CBS에서 숙청( ?)당했어요. ‘슈퍼걸’같은 경우는 1시즌은 CBS에서 방영했지만 2시즌은 CBS가 제작비를 너무 짜게 배정해서 워너가 그냥 자기네 채널(CW)에서 틀었고, 2 broke girls의 경우 워너가 만든 시트콤 중에 역대 최대의 신디케이션 수익을 벌어다 준 시트콤으로 알고있는데 올해 6시즌을 끝으로 결국 캔슬당했죠. 워너한테 돈을 벌어다준거지 CBS한테 벌어다준게 아니니까 캔슬시켰나봅니다(시청률도 떨어지긴 했습니다). 뭐 드라마산업도 산업이니까 수익성이 최우선이 되어야 유지가 되는건 맞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긴해요.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이 더 먼저 사라지는현상을 보고 있으니 씁쓸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습니다. 빅뱅이론처럼 압도적인 시청률을 자랑하는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판권이 워너한테 있는데도 안짤리고 살아남아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그런데 빅뱅이론도 이제 시청률이 예전같지 않아서 안심할 순 없습니다. 결국 미국드라마 시장의 핵심적인 동향이라고 하면 네트워크와 스튜디오간의 수직계열화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러면 사실상 방송국이 프로그램의 판권을 쥐고있는, 지금 우리나라와 비슷한 형태의 시스템을 향해 가고 있는 것 아닐까요. 물론 우리나라에는 이렇다할 ‘스튜디오’라고 할 수 있는게 없어서 사정이 다르긴 합니다만, 크게 봤을때 제작사와 방송사의 파워게임에서 방송사가 이전보다 좀 더 큰 힘과 권한을 갖게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각각의 채널이 자기 계열 스튜디오를 갖고 2차판권 수익으로 리스크 관리 하면서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생산해서 공급하는게 채널도 좋고 스튜디오도 좋고 제작사도, 시청자도 모두 좋은,다 같이 윈윈할 수 있는 방법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미국에 비해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하기 힘들고, 스튜디오를 가진 제작사도 없고, 내수시장이 작고, 스트리밍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도 제한적인 상태에서 대대적인 수직계열화가 일어나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통신사들이 컨텐츠 산업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든다면 가능할수도 있을까요 ?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지금까지 방송산업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방송사가 판권을 갖지 못하게 해야하고, 수익과 권한을 최대한 분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질문이 엄청나게 많아졌는데, 이상하게도 질문을 해서 답변을 들으면 들을수록 의문점이 더 늘어나기만 합니다. 저는 예전부터 다른사람한테 질문하는 것 만으로는 결코 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제 생각이 맞았던것 같아요. 진짜 답을 찾고 싶으면 스스로 많이 생각하고 공부해야할 것 같습니다. 방구석에 처박혀있는 먼지쌓인 방송학 개론도 다시 읽어보고, 미국 드라마 시장의 최신 경향을 반영한 책도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할일이 많아지네요. 마음은 바빠지고. 팀기획안도 써야하고 운전면허도 따야하는데 그리고 잠도 자야 함 하루는 왜 고작 24시간이며 인생은 왜 이렇게 짧은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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