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다. 나는 2주 전에 스물 여섯이 됐다. 그리고 한 달 후면 편의상 스물 일곱이 될 거다. 난 내가 영원히 스물 일곱살이 되지 않을 줄 알았다. 인생은 끝없이 새롭고 즐거운 일로 가득하지만 어떤 것들은 한번 지나가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걸 실감하고 나니까 슬프다. 스쿨에서 보내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곳은 내 인생 마지막 '스쿨'일지도 모른다. 물론 난 앞으로 당분간 어딜가나 항상 배우는 입장이겠지만. 그래도 일을 시작하면 느낌이 달라지겠지. 모든게. 저번주에 팀기획안을 제출했다. 마감일 전날 새벽에 갑자기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내 인생 최대의 위기인걸 직감했다. 린스를 하고 행구지 않은 상태여서 씻다 말 수도 없었다.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서 그 새벽에 찬물 샤워를 했다. 어푸어푸ㅜ퍼풔 그건 그냥 찬물이 아니라 정말 얼음장 같이 찬물이었다. 씻고 나니 한층 더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번쩍번쩍! .....그런데 왜 그러고 나서 바로 잠들었을까. 정말 대반전이다. 정신이 아무리 번쩍들어도 잠이 오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기획안 제출을 일주일 남겨두고 매일매일 '아 오늘은 자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맨날 잤다. '오늘은 기필코 버텨야지' -> 꿀잠^^ -> '어 자버렸네ㅡㅡ 아씨 오늘은 진짜로 자지 말아야지' -> 꿀잠^^ 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일주일 내내 하루에 네시간 정도씩 꼬박꼬박 자서 어디 아픈데 없이 잘 버틴 것 같아 후회는 안된다. 다만 팀원들한테 좀 미안하다. 내가 안자고 좀더 했으면 팀원들이 나 대신 좀 더 잘 수 있었을텐데. 근데 뭐 인생 다 그런거지. 팀원들도 이해해줄거라고 믿는다. 따뜻한 물은 다음날 아침에도 나오지 않았다. 밤 늦게 집에 들어오니까 겨우 나왔다. 그래서 30분동안 뜨거운 물로 샤워했다. 너무 행복했다. '와 따뜻하다. 이제 딱 자면 되겠다...일주일동안 고생했으니까 맘 편하게 자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왔다. 결국 밤 샜다. 내 바이오리듬은 정말 이상한것같다. 무슨 바이오리듬이 청개구리도 아니고... 연구대상이다. 인턴쉽할때 이것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약이라도 먹어서 조절하자. 아무튼 이렇게 연말되니까 나이먹는 느낌때문에 싱숭생숭하고, 또 따뜻한 물 안나와서 고생하기도 하고, 이러니 저러니 힘든게 많지만 그래도 난 겨울이 좋다. 원래도 좋았는데 고딩때 기형도 시인의 밤눈이라는 시를 읽고 더 좋아졌다. 그때 난 그 시 내용이 기형도가 나한테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니깐 내가 바로 밤눈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으....자의식 과잉....소름....그래도 그땐 중2병 환자였으니까 봐주자. 음 근데 사실 며칠 전에 그 시를 다시 한번 읽어봤는데 고딩때 읽었을 때랑 똑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난 아직 중2병 환자인가보다. 여기에 그 시를 적고 싶지만 그건 너무 오글거려서 못하겠다. 한번 검색해 보길 추천한다. 짱 좋다. 겨울에 읽기 좋은 시다. 특히 겨울에 힘들때 읽기 좋은 시다 스쿨 친구들이랑 방어먹으러 가고 싶다. 가자! 고고고 제발 한 번 가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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